여행지에서의 진짜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그 도시의 전통시장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명소보다 시장은 더 생생한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에는 현지인의 목소리가 있고, 냄새가 있고, 리듬이 있다. 아침에 문을 여는 소리부터 밤에 상인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이곳은 매일이 다르고 생동감 넘치는 연극 무대와 같다. 나는 어느 작은 도시의 전통시장 한켠에 방을 구해 며칠을 지내보기로 했다. 단순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사람들과 부대끼고, 그들의 하루를 따라 살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잊고 지냈던 생활의 리듬, 그리고 진짜 사람 냄새가 나는 시간을 만났다.
시장의 하루는 새벽에 시작된다
전통시장에서의 하루는 도시보다 훨씬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시계가 알람을 울리기 전, 나는 시장 한복판에 울려 퍼지는 소리로 눈을 뜨게 된다. 트럭이 들어오고, 물건을 내리는 소리, 상인들끼리 나누는 짧은 인사, 그리고 생선이나 채소를 담은 박스가 바닥에 놓이며 나는 바쁜 하루의 시작을 체감하게 된다. 시장에서 머무는 첫날, 나는 이른 새벽 어시장 구역을 찾아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갈치, 은빛을 반짝이며 살아 움직이는 멸치 무리, 물기를 머금은 채소와 갓 따온 듯한 과일들. 이 모든 것들이 신선함을 넘어서 살아있는 재료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 옆에서는 칼을 갈고 있는 생선 가게 아저씨,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청년들,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어딘가에서 시작된 튀김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는 반쯤 잠에서 깬 상태로 시장 구석구석을 걸었다. 한 상인은 나를 보고 어디서 왔냐 묻고, 갓 튀긴 고구마 튀김 하나를 손에 쥐여준다. 그런 따뜻한 순간들이 이른 아침 시장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물건을 팔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통시장은 단지 재래식 거래소가 아니라, 인간적인 온도가 오가는 곳이다. 아침이 되면 시장은 다시 또 하루를 시작하고, 나는 그 하루의 일부가 되어 움직이게 된다. 상인들의 미소, 가격을 흥정하는 목소리, 분주히 움직이는 손길 하나하나가 내가 알고 있던 ‘일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밥상에 오르기까지 시장에서 장을 보다
시장에 머물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현지의 식탁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나는 시장 상인들과 똑같이 장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무얼 사야 할지도, 어떻게 조리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시장의 구조와 물건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선은 아침 일찍 가야 신선하고, 야채는 점심 무렵이 가격 흥정이 수월하며, 닭고기나 고기류는 일과 마무리 즈음에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각 상점마다 ‘단골’이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나는 일부러 같은 가게를 찾아가 인사를 나누며 물건을 사고, 간단한 조리법을 물었다. 그러면 상인들은 친절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요리 팁을 알려주곤 했다. 시장에서 산 오징어로 볶음을 하고, 제철 채소로 나물을 무쳐 먹고, 어떤 날은 두부를 사다가 된장찌개를 끓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 느낀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의 관계와 시간이었다. 누가 생산했고, 누가 팔았으며, 어떻게 조리했는지가 내 밥을 더욱 깊고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시장에서의 장보기는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행위였고, 나 스스로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기초 작업이었다. 도시의 대형 마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먹는 일의 본질을 나는 이 전통시장에서 다시 배웠다. 식재료의 진짜 맛은 신선함만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단골이 된다는 것 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감각
며칠간 전통시장 한복판에서 살아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내가 어느 순간 손님에서 단골로 변해간다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얼굴로 눈인사를 하던 상인들이, 사흘째가 되자 내 이름을 기억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권하기 시작했다. 한 반찬가게 할머니는 내가 나타나자 오늘은 된장찌개 해 먹으면 딱이야라며 미리 두부와 애호박을 챙겨주셨고, 청과물 가게 아저씨는 잘 익은 감 한 봉지를 슬쩍 얹어주며 이건 서비스야라며 웃으셨다. 그렇게 나와 시장 사이에는 아주 작고도 단단한 관계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내가 어딜 가든 또 오셨네요, 오늘은 혼자예요, 지난번에 사간 생선 맛있게 드셨어요 같은 인사가 오갔고, 그 안부의 무게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곧 깨달았다. 시장이라는 공간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하루가 교차하고 엮이는, 살아있는 생활의 교차로였다. 아침이면 좌판을 펼치며 라디오를 켜놓고 콧노래를 부르는 김밥집 아주머니, 남편과 함께 떡을 쪄서 파는 노부부, 아이를 안고 바쁘게 손님을 응대하는 젊은 엄마 상인까지. 누구 하나 이곳에서 대충 사는 사람이 없었다. 전부 자신만의 리듬과 이야기로 이 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생선 가게 앞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도 이제는 반가운 얼굴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들 틈에서 함께 산다는 감각을 배우고 있었다. 단골이 된다는 건 단순히 같은 가게를 자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일원이 되는 일이었다. 말없이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시작되는 시장의 풍경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시장의 풍경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반찬가게 할머니가 갑자기 내게 앉아서 잠깐 쉬었다 가라며 의자를 내어주셨다. 장사를 하며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날의 반찬을 추천받았다. 또 다른 날은 생선가게 사장님이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커피 한 잔을 같이 마시자며 뒷편 작은 의자에 나를 앉혔다. 그렇게 주고받는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정이라는 단어가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시장에서는 상인이 손님을 기억하고, 손님도 상인을 기억한다. 서로가 서로의 하루 속에 들어와 함께 시간을 누린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어깨를 톡톡 치며 오늘은 일찍 문 닫으세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도시에서는 잊기 쉬운 감정들이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불필요한 경계 없이 삶의 조각들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전통시장이었다. 여기서의 하루는 반복이 아닌 변화였고, 평범한 장보기가 정다운 만남이 되었다. 시장의 선물은 신선한 식재료나 저렴한 가격만이 아니다. 진짜 선물은 내가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하루를 만들어가는 경험이었다. 전통시장에서 내가 얻은 건 물건이 아니라 관계였고, 그 관계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온도였다. 단골이 된다는 건, 결국 함께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시장이라는 작은 마을 안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하루를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고, 그 안에서 다시금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인지, 어떤 일상에 감사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경험은 여행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